< 표면위에 겉도는 파라다이스 >


                                                                                                                                                                                                                                                                                                                                          김승현(작가)

 김민성 작가는 회화작업에 겔 미디움을 사용한다. 겔 미디움은 합성수지로 만든 재료라 빨리 마르고 단단하게 굳어 수지특유의 플라스틱 질감이 난다. 그는 주로 건물과 풍경을 그리는데, 겔미디움에 아크릴물감을 섞어 사용하기 때문에 총천연색을 가진 실제풍경과 달리 색감이 인위적이다. 때문에 캔버스 위의 풍경은 자연의 이미지와 차이가 있다. 이런 색감은 초기 작업에서부터 이어지고 있다. 작가는 겔 미디움 이전에 마카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다. 마카는 잉크가 나오는 폭이 정해져있어 수직보다는 수평으로 움직이며 사용하게 된다. 또 붓처럼 눌러 넓은 면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던 탓에 작업을 보면 선을 반복해서 그어 면을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납작한 표면은 이런 표현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마카에 이어 사용하는 겔 미디움 역시 표현방법이 유사하다. 작가는 요리에 사용하는 플라스틱 소스통에 아크릴물감과 섞은 겔미디움을 채워 사용한다. 소스통의 노즐은 마카와 마찬가지로 물감이 흘러나오는 폭이 정해져있어 작가의 작업에서 일정한 폭의 물감 선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마카처럼 선을 겹쳐 면을 표현하는 공통점이 있다. 마카에서 겔미디움으로 재료를 바꾸면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수평적 표현뿐만 아니라 수직적 표현까지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겔미디움을 수직으로 쌓으면서 사용하기 때문에 그만큼 이미지가 구축되는 모습을 잘 표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특징은 그가 건축물을 소재로 그린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이제 앞선 실험들에 이어 물감을 뿌리고 뭉개는 표현과 투명한 겔미디움을 그대로 사용하는 표현까지 실험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건축물의 외형을 따르며 물감을 뭉개고 뿌리는 표현으로 화면에 속도감을 더했고, 투명한 겔미디움을 물감 층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 방법으로 여러 겹의 물감 층을 하나로 고정시켜 공간감도 만들어냈다. 겔미디움을 뿌리고 뭉게며 만들어진 속도감과, 투명한 물감으로 얻어낸 다색의 층위가 만든 공간감은 겔미디움을 이용한 초기작품에서 이어진 실험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이다. 김민성 작가는 계속해서 기존의 표현방법이 가진 한계를 새로운 재료를 연구하고 사용하면서 확장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만든 다양한 표면들로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 본 김민성 작가의 작업은 비닐과 플라스틱 필름이 물에 젖은 채로 겹겹이 쌓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비닐과 플라스틱은 물에 젖지 않고, 비닐위로 물이 뿌려진다 하더라도 물이 마르기 전까지 표면에 묻어 있을 뿐 다른 변화는 없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업은 이상하게 젖은 것처럼 보였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 제목을 < 파라다이스 >로 정했다. ‘파라다이스’는 낙원이나 천국을 의미한다. 우리는 쉽게 ‘여기가 천국-혹은 지옥’ 이라 말 하곤 하지만 그곳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떻게 감각 할 수 없는 것을 감각한 듯 말하게 된 것일까. 나는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마주하며 받았던 물에 젖은 비닐과 플라스틱 필름 같았던 작업표면의 인상으로부터 작가가 말하는 파라다이스를 짐작해 보려고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비닐과 플라스틱필름은 물에 젖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젖은 상태로 보았다. 여기서 현상을 지켜보고 있는 나의 존재를 떠올리게 되었다. 한정된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신호를 무한정 증폭할 수 있는 존재, 무더위에 마시는 한 모금 얼음물에 천국을 느끼고, 말 한마디 눈 빛 하나에 지옥을 느끼는 생명체인 인간. 하지만 물질로 모든 감정을 계량해서 수치화하고 교환할 수 있을 것 같은 지금에는, 사실 죽어도 좋을 행복의 순간도 죽고 싶은 불행의 순간도 물에 젖어 보이는 비닐처럼 내면 깊이 젖어들지 못하고 피부위에 겉도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표현방법은 표면을 겉도는 이미지를 겹겹이 쌓아올려 시선이 침투할 깊이를 확보하려는 연속된 시도로 보이는 동시에, 그 얕은 깊이에 파라다이스가 자리한 시공을 만들어 찰나의 순간을 밀봉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