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스크린샷 >
이규식(독립 큐레이터)
계속해서 시간이 흘러가는 현실(Real-life)에서 사진에 담긴 모습이나 영상의 일시 정지, 스마트폰 혹은 컴퓨터 화면의 캡처 기능과 같이 ‘완전히 정지된 상태’는 개념적으로만 존재한다. 화면을 캡처하듯 일상에서 마주하는 순간을 온전히 포착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미지와 소리, 냄새와 같이 감각 기관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지각뿐만 아니라 감정이나 상념까지도 한데 얽혀있는 ‘순간’ 그 자체를 포착한다면 말이다. 회화 매체를 통해 본인이 목격하거나 관찰한 표면에 대해 기록해온 김민성은 근작에서 물질적인 표면의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포착한 뒤, 이를 다시 변형시키고 재구성함으로써 작가 본인의 주관적인 기억과 감정의 레이어를 쌓아 올린다. 그렇게 재구성된 이미지는 시각적인 재현을 넘어 ‘순간의 원형’에 가까운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김민성은 회화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어느 특정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며 표면과 형식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계속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은 작품의 주제를 본인이 일상에서 느낀 단상에서 불러온다는 점이다. < A21 >(2016), < A7 >(2016)에서 작가는 마카를 사용해 일상에서 마주한 풍경을 픽셀화(Pixelate)하듯 재구성했다. 2017년도에 제작된 < Folk Village > 등을 통해서는 일상에서 관찰한 자연을 재해석해 화면에 옮기며 배경과 같은 특정 요소들을 선별적으로 탈락시킴으로써 이미지 변형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2018년 제작된 《The ocean》 연작에서는 전작에서 일부 사용하기 시작한 겔 미디엄(Gel Medium)을 화면 전체에 등장시키며 다양한 재료 실험을 진행했다. 2019년부터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캔버스 천에 출력하고, 마스킹테이프와 에어스프레이, 겔 미디엄 등을 통해 원본의 이미지를 거의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훼손시키고 중첩하면서 지나치게 빠르게 감각되고 교체되는 물질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덟 개의 캔버스로 제작된 세로 3m, 가로 6m의 대형 작업 < At a high Sierra >(2020)는 맥OS(macOS)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배경화면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다. 정확하게 말해 이 이미지는 2016년 공개된 맥OS 시에라(Sierra)의 배경화면으로, 실제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산맥이다. 작가는 먼저 본인이 실제로 사용하는 랩탑의 화면을 캡처하고 그래픽 툴을 활용해 일부분을 흐리게(Blur) 만들거나 잘라내고 붙이는 등의 일차적인 가공을 거친 후, 이를 다시 여덟 개의 이미지로 조각내서 각각의 캔버스에 디지털 인쇄했다. 그 후 겔 미디엄과 에어스프레이를 이용해 다시 한번 이미지를 변형시킨다. 작품은 필터를 통해 일부분이 흐려졌을 뿐만 아니라 작가가 관찰하는 실제의 스크린보다 훨씬 큰 사이즈로 확대해 제작되었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개별적인 요소를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뒤로 멀어져야 비로소 떠오르는 이미지는 읽지 않은 메시지가 쌓여있는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의 모습이다. 화면에서 멀어질수록 견고해지는 또 하나의 장치는 관객에게 착시를 유발하게 하는 흰색의 수직선이다. 실제로 걸려있는 캔버스 사이의 틈과 동일한 간격으로 화면을 가로지르는 수직선은 ‘사실 그대로’를 인지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정체시키면서 인지의 프로세스를 의심하게 만든다.
2020년에 제작된 이번 작품이 현재 맥OS가 제공하고 있는 최신의 운영체제가 아닌 구버전 운영체제의 이미지를 가져온 이유에 대해 자연스레 의문이 생겼는데, 작가에 따르면 이는 ‘현재 본인이 가장 많이 마주하는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민성의 작업은 스크린 너머 디지털과 가상의 영역이 아닌, 실존하는 세계의 시선에 그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자리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었을까. 원형을 가늠할 수 없게 조각난 파일 탐색기와 화면에 번지고 있는 읽지 않은 메시지들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화면에 버튼을 눌러 스크린샷을 남기듯이, 작가는 지나쳐버릴 수 있었던 일상의 순간을 ‘표면의 모습’으로 포착하고,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그 순간의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하는 행위를 통해 역설적으로 가장 깊숙한 곳을 배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