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

                                                                                                                                                                                                                                                                                                            김정윤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깨어 하루를 시작한다. 유튜브로 음악을 듣고 세상의 새로운 소식을 접한다.
인스타그램은 하루의 단편을 업로드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창구이다. 스마트워치가 오늘의 활동량을 체크해주고 수면시간을 알려준다. 아이패드로 글을 쓰는 지금, OS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알림이 뜬다. 최신 기술이 우리를 인도하며 최신 정보와 넘쳐나는 이미지를 마주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보다 영리할 수 없을 것 같은 지금, 우리는 포스트 인터넷 시대를 살고 있다.

  김민성 작가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보는 것’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의문은 특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모호한 이 시대의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것들, 바로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대면하는 세상의 이미지들이다. 포스트 인터넷 시대를 사는 작가에게 맥북 안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은 우리 일상을 대변하는 매체이자 작업 소재가 된다. 

 2020년 시리즈에서 김민성 작가는 맥(mac)OS 기본 배경 화면을 회화 전면에 가지고 왔다. 맥 운영체제가 업데이트될 때 해당 OS를 특징짓는 지명의 풍경이 업데이트 완료와 함께 우아하게 등장한다. 이 배경 화면은 그야말로 최신 버전 업데이트를 통해 우리를 최상의 스마트한 세상으로 인도해주는 문(gate)이자 온·오프라인이 혼재되어있는 이 세상의 표상이 된다. 이 중 At a High Sierra(2020)는 대형 캔버스에 시에라 산맥이 등장한다. 작품 크기에 먼저 압도된 후 작품을 천천히 마주할 때, 일상에서 가장 많이 보는 이미지들을 발견하게 된다. 맥 파인더(finder), 카카오톡의 화면이 흐릿하게 시에라 산맥 위를 부유하고 있다. 한편 캔버스를 나누는 화이트 수직선들은 시에라 산맥으로 가는 시선을 방해하고 있다. 
 이후 작가가 선보인 〈미션 컨트롤(Mission Control)〉(2021) 시리즈 역시 맥북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능인 ‘미션 컨트롤’을 소재로 그에게 침투해있는 온라인 속 일상을 드러내었다. 수많은 창(browsers), 앱(appplication)의 아이콘, 주식과 캘린더의 화면 등을 은은하지만 보다 직관적으로 표현해냈다. 온라인 일상을 확장해놓은 듯하며 컴퓨터 스크린이 캔버스로 바뀌어 우리가 매일 대면하는 화면을 회화로 재탄생시켰다. 

 ‘흐리면서도 은은한(Blurry)’ 대상의 표현과 대상의 직접적 해석을 방해하는 ‘선의 분할’은 The Paradise(2019), At a High Sierra(2020), Mission Control(2021)로 이어지는 작업에서 작가의 회화적 미감을 뚜렷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블러리한(Blurry) 묘사와 수직선 분할의 등장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 온라인 세계의 무작위성, 온라인 속 흘러넘치는 이미지 등 작가가 지속해서 자문하는 ‘보는 것’에 대한 작가의 해석으로 보인다.
 김민성 작가의 회화는 작품 설치 방식을 통해 한층 더 두드러진다. 전시실 벽면에서 띄워져 벽과 캔버스 사이의 공간을 만들어 전시하거나 수많은 창이 띄워져 있는 스크린처럼 나열되어있는 작품의 설치는 마치 캔버스가 하나의 스크린이자 새로운 공간(space)을 연결하는 미션 컨트롤의 세계의 진입을 기다리는 창들과 같도록 인식하게 만든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의 해석을 담은 작품과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설치 방식을 결합하여 회화적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김민성 작가의 이번 전시명 ‘Alternate World’는 ‘대안적 세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대안적 세계는 바로 가상 공간을 지칭하고 이전 시리즈와 맥락을 함께하는 작품들을 전시에서 소개한다. Big Sur(2022)는 2020년에 ‘시에라(Sierra), 하이 시에라(High Sierra), 모하비(Mojave), 카탈리나(Catalina)’ 등 맥OS 버전의 배경화면을 소재로 한 시리즈와 유사한 작품이다. 예전 작업에서는 ‘블러리(Blurry)’와 ‘분할’이 두드러졌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맥OS ‘Big Sur’의 배경을 좀 더 부각하고 있다. 한 캔버스에서 분할을 보여준 이전 작업과 달리 이번에는 총 5점을 ‘스탠딩 회화’ 설치 방식을 통해 선보인다. 3점은 스탠딩 형식으로 세워져 설치하고 벽면에 걸린 2점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전시한다. 흑백으로 표현한 가장 앞의 작업부터 뒤로 갈수록 채도가 높은 Big Sur를 마주하게 되는데 채도를 달리하여 거리감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이 거리감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모호한 지금 ‘Alternate World’와 ‘Real World’의 거리가 점점 상실되어가는 이 시대를 지각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평면 회화의 정형화된 디스플레이가 아닌 설치 작품처럼 보이도록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스탠딩’ 회화의 시도는 회화의 평면성을 탈피하려는 작가의 실험이자 시대 현상에 대한 작가의 고민의 결과를 전달하고 관람객에게 생각의 여지를 던져줄 수 있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가 선택하는 이미지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기보다 수많은 일상 이미지 중 시각적으로 좀 더 다가온 것이다. Donbas(2022) 역시 그런 이미지를 선택하여 반짝반짝하고 미적 요소를 충족시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과연 이 작품 속 메시지는 무엇일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우리가 현실보다 더 많이 대면하는 온라인의 세계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해체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Alternate World’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모든 것이 가능한 온라인 일상의 해석을 가장 클래식한 회화를 통해 작가는 표현하고 있다. 마치 ‘Alternate World’에서 작가를 ‘Real World’로 데려와 주는 것처럼 김민성 작가는 그렇게 회화를 통하여 보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매 시리즈마다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김민성 작가의 회화를 마주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그려보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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